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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같은 여건에게...
4월 들어 벌써 여러 날째 쑥으로는 된장국을 끓이고,
냉이며 돌나물 등 여러 푸성귀는 고추장에 버무려 먹었다.
그야말로 지난겨울 바짝 움츠렸던 쾌쾌한 속 뜰에 생생한 싱그러움을 불어 넣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봄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깨비 같은 세상놀음에 몸과 마음이 홀려 스스로, 몸으로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전령을 맞이하고
나서야 "아하~ 봄이로구나!"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겨울은 숲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낀 스승의 계절이었다.
사지가 오그라드는 엄동설한으로 이틀 사흘에 한 번씩 뒷산에 올라
두어짐씩 땔감을 지게에 지고 내려와 그래도 사람 사는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자연주의자처럼 화석에너지를 거부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 자연의 순리와 운치로 나를 이끈 것은 '싱겁게도' 돈이었다.
매일 매일의 삶이 총력전을 치루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먹고 입는 것은 최소한으로 절재하고 이러저러 사회적 거동은 삼가 해서
많지 않은 수입을 오로지 작업에만 쏟아 붙고 있는 처지이다 보니
난방비 따위가 따로 마련될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나무꾼 노릇이었다.
그림 그리던 이젤로 지게도 만들고,
부여잡고 일어 설 튼튼한 작대기도 깎고...
그렇게 한겨울 쩡쩡한 삶을 가로지르며 내 어깨를 짓누르던 생활고를 버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을 오르내리며 무슨 계획 같은걸 세운다든지, 지나온 날들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로지 오늘의 내 삶을 온전히 하고 싶었을 뿐이다.
생명을 다한 썩은 나무를 톱질하며 그 삶을 쓰다듬고
이름 모를 새소리에 무슨 소식인가? 귀 기울여도 보고
코가 찡한 찬바람에 "아이쿠! 춥다 추워"라며 혼잣말도 해보고
눈길이 머무는 허허로운 곳에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도 그려 놓았지...
여건,
텃밭에 뿌린 채소 씨들이 방긋 떡잎 인사 하듯,
민들레가 한껏 키를 키워 실바람에 홀씨 날려 보내듯,
네 시(詩)를 읽는다는 것은 이 봄 나에게 큰 기쁨이고 위안이다.
특히 [김장김치를 담그며..]는 인스턴트 라면 같은 세상에 꼭 곁들여 먹어야할 시(詩)다.
감사히 먹었다...하하하!
[찔레꽃]이 필 때쯤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0. 4.12.
지난겨울 나무꾼이었던 야단이가...
★
김장김치를 담그며
詩.윤여건
양념거리를 사서 늦은 밤까지 다듬었지만 일어난 것은 새벽 다섯 시
김치 냉장고를 청소하고 방앗간에 가서 양념을 빻아오니
벌써 아홉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양념만 준비해 놓으면 하루 안에 김치를 다 담그겠지?
고작 서른 포긴데…….”
생을 절여 저장하는 일인데 ‘고작’이라니?
처재까지 불러 놓고 일을 시키고 마는 나의 무지가
채우지 못한 김장독 같아 서글프다.
절임 배추를 사러 시장에 가는 길
교복 입은 여자 아이가 지나간다.
겉절이처럼 싱싱한 양념과 젓국이 묻어나지만
아직 한 숨 재워지는 맛까지는 느낄 수 없으리라.
농협 앞 횡단보도에 이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김장독에서 발효되어 익다 이젠 효모처럼 검버섯이 피어났지만
매운 생을 찢어 자식에게 얹어주었을 그 마음이 젖산처럼 아삭거린다.
★
찔레꽃
詩.윤여건
나는 누구입니까?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철따라 찔레꽃
피고, 내 눈에
비추어진 하늘에
나는 누구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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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토요일,
정말 찔레꽃이 만발한 작업장에
우리 '윤여건'시인(우측)이 방문했다.
걸걸한 내 고향 막걸리와 상큼한 딸기를 싸 들고...
모처럼 밤늦도록 작업장 뜰에 모닷불 까지 지펴 놓고
정겨운 그간의 추억들과 오늘의 싱싱한 마음들을 밝혔지요.
"나는 누구입니까?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철따라 찔레꽃
피고, 내 눈에
비추어진 하늘에
나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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