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도일 조각전

도일 조각초대전-生之蓄之(갤러리빔)

몽선 2010. 8. 27. 10:55

 

 

 

 

 

 

 

 

오브제(objet)로부터 조형의 자유-

마음에 새긴 형태, 그것은 곧 조각이다

 

 박소(조형예술학박사)

                                                   

1.

   프레데릭 제임슨은 그의 소논문<대중문화에서의 물화와 유토피아>에서, 현대인은 풍경을 더 이상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으로 보지 않고, 자연 공간을 물질적 이미지로 생생하게 변형 시켜 개인적 소유물로 전환시킨다고 말한다. 풍경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행위 즉, 본다는 행위는 사진이라는 수단과 행동을 통해서 상품화의 과정으로 편리하게 바뀌었다. 이러한 소비사회의 모든 것이 미적 차원을 떠맡았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는 한도 내에서 상품화의 과정이 미학과 관련된다. 제임슨이 지적한 것처럼 물질화 된 이 시대에 현대 예술에는 예술가의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재료와 도구이다. 도일의 작업은 반예술의 개념을 실천하기 위해 오브제(objet)의 기능을 전복시킨 뒤샹과는 달리 물질문명 전반에 대한 보편적인 성찰을 제안하기 위하여 오브제(objet)인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밥그릇이나 국그릇 등의 식도구들을 자르고 두들겨 붙여서 공간 속에서 드로잉을 하듯이 금속을 가볍고 경쾌하게 다루는 작업을 해온 신작들을 발표한다. 도일은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를 잘라서 조각낸 후 종이를 풀로 살짝 붙이듯 그 조각들의 끝부분을 용접함으로써 변주되면서 빚어내는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뒤에 숨은 작가의 노고를 느끼게 하고, 육중한 조각과는 거리를 둔다. 그러나 그의 조각은 가볍지 않고 신중함은 구조적이면서 견고한 형태에서 비롯된다. 회화가 이차원의 표면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라면 조각은 공간 속의 삼차원 입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도일의 조각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즉 이차원에서 삼차원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평면과 입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잘린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의 조합 과정에서 무한히 변경될 수 있음을 상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 형태는 식물이 성장하듯 무한 변형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 덕분에 그의 작품은 잘린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들이 서로 이어지면서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서 볼륨과 매스가 생성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노출시킨다.


2.

   도일 작품에서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같은 식도구들의 경우 개인만이 사용하는 개별성의 차원에서보다 가족, 지역, 사회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문화공동체적 공공성을 띠는 특성을 지닌다. 많은 사람들의 몸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즉 먹는 것이나 쉬는 것의 용도를 가진 오브제(objet)들이라 하겠다. 작가는 이런 재료들을 고물상이나 친구들, 폐업하는 식당 등을 통해 확보했다고 한다. 이들 재료는 무수히 그려나간다는 회화적 발상으로 용접하여 이어가면서 공간을 확정지우고 형상을 만들어가는 반복 행위를 통해 기존의 조각 개념에서 탈피한 도일식 조각을 만들어 낸다. 즉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의 등장은 재료와 표현 영역의 확대뿐 아니라 사회현실의 시대 상황을 예술로 승화시켜 예술과 대중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였다. 특히 도일 작품에서 아쌍블라주(assemblage) 기법을 통해 총의 형상으로 제작된 <Gun 시리즈> 작품들은 식(食)문화의 예술화를 해학적으로 보여주는 설치작품이다. 즉 식량전쟁에 대한 경고이자 그 위험성을 알레고리로 표현된 작품이다.  이와 같이 숟가락, 젓가락, 포크, 나이프 같은 식도구들은 특정한 사물을 그것이 갖는 보편적인 이미지나 역할에서 일탈시켜 다른 문맥에 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체가 지니고 있는 단순한 이미지의 대상화 작업이 아닌 물체에 대한 일상적 인식의 상태를 넘어 차원을 달리한 새로운 재인식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대상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지각에서 태어난다. 사물에 대한 선입견 또는 이미지에 사로잡힘 없이 물질의 순수한 그 자체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데서 기인하는데 이는 ‘보아왔던 것’에서 ‘보여지는 것’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3.

   롤랑 바르트르의 견해에 따르면 “일상생활은 지루한 반복이 아닌 고도로 발달한 거대한 현대사회의 일상적 삶의 급진적 변화를 보여주는 스펙터클(spectacular) 자체의 시각적 대상물로 간주되고 있다”. 현대미술의 담론에서 일상성이 중요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즉 작품<일보일배(一步一盃)>, <만인보(萬人步)>는 숟가락 젓가락을 자르고 두들겨 붙여서 공간 드로잉으로 재현된  현대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백팔번뇌를 연상시키는 108개의 인간상의 이미지를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원한다. 즉 시시콜콜해 보이는 각각의 개인사적 일상이 작가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삶의 관심사인 듯하다. 작가는 현실에서 작가주변의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미술의 소재를 발견하고, 일상 속에서 나날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거나 고상하지도 완벽하지도 못하지만 그러한 일상을 마주하는 작가의 시선에 따라 주변 세계는 얼마든지 특별한 세계로 탈바꿈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평범한 일상이 기념비적인 차원으로 고양되기도 하고, 스펙터클(spectacular)하고 다채롭게 보여지기도 한다. 이 처럼 일상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해석과 표현방식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4.

   최근 작품들은 스텐 숟가락들을 잘라 유니트를 만들고 용접을 통해 그것들을 붙여나간 작품 <Beyond the Line 1>은 선보다 면을, 투명하게 열려진 공간보다 조직적으로 구축된 형태를 추수하고자 작가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먼저 자른 숟가락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형태는 조각으로 표현한 소리이자 운율의 흐름 또는 자라나는 꽃 혹은 거대하게 확대된 식물을 연상 시킨다. 이 작품을 제작한 후 그는 표면을 광택을 냈다. 이와 같이 완성한 작품을 배치하면서, 조명이나 주위의 환경과 같은 요소들에 주목한 작가는 빛의 변화와 독특한 배치를 통해 조각에 극적이고 서술적인 효과를 부여했다. 따라서 광택을 낸 표면의 굴곡진 형태는 시각적인 현상 너머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게 되는 ‘반사’와 ‘반성’이라는 ‘refection’의 두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외부 공간을 반영하고 둘러싼 환경과 혼합됨으로써 단순한 게슈탈트에 대한 지각에 혼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작품의 표면들의 반사들은 관람자들의 시각을 왜곡함으로써 실제로 그것이 무엇인가,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확실히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역할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스텐 숟가락 표면들에 반영되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사물의 수가 많아지거나 적어지고, 부피가 커지거나 작아지기도 한다. 심지어 잘려나가거나 뭉툭해지고 홀쭉해지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왜곡된 상황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시각은 의존하거나 믿을 만한 것이 못되고, 매우 변덕스러운 것이 된다. 또한 바닥에 놓은 <Beyond the Line>,<White Hole> 작품의 경우 정자 또는 성장하는 식물과 같은 자연대상을 연상 시킨다. 자연대상을 유추하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 그것이야말로 도일이 주제이자 내용이다. 그가 만들어 놓은 형태가 자연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아니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만큼 자연을 모방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는 마음에 새긴 형태를 물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아침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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